허난설헌 생가 방문

2009. 3. 14. 21:36강릉이야기

강릉의 대표적인 인물이자 역사적 인물을 꼽으라면 신사임당과 허난설헌을 들수 있다. 신사임당과 허난설헌을 비교하자면 신사임당은 나름 평온하고 부유하게 또한 율곡의 어머니로서 일찍부터 역사적인 인물로 칭송받던 분이시고 그에 비해 허난설헌은 삶의 질곡을 온몸으로 느끼며 짧은 인생을 보내신 분으로 아마 홍길동전을 지으신 허균은 알아도 허난설헌이 누구신지 모르는 사람도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허균허난설헌기념관에 소개한 허난설현
허난설헌(1563~1589)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여류시인의 한 사람인 허난설헌은 1563년 강원도 강릉에서 테어 났다 어릴때 부터 재주가 비상하고 출중하였으며 아명을 초희라고 했다. 허난설헌은 화담 서경덕의 문인인 허엽의 딸이자 미암 유희춘의 문인인 허성과 허봉의 동생이며,유성룡과 이달에게 문장과 시를 배운 허균의 누이였다. 이런 가정환경과 문학교육이 허난설헌시문학의 뿌리가 되었다.
허난설헌이 어린나이에 지은 <광한전백옥루상량문>은 천재성을 유감없이 발휘한 작품이다.
중국 <양조평양록>, 김만중의 <서포만필> 에서도 허난설현의 재능을 격찬한바 있으며 오빠
허봉도 "난설헌의 시는 배워서는 그렇게 될 수 없다"라고 할 만큼 허난설헌의 재주가 천부적
이라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인터넷 검색으로 본 허난설헌의 약사
  • 1563년 명종 18년 강릉 초당 생가에서 당대의 석학인 초당 허엽의 셋째딸로 태어났다.
  • 1570년 선조 3년, 8세 때 '광한전백옥루 상량문'을 지었다.
  • 1577년 선조 10년, 15세 때 안동김씨 가문의 김성립에게 출가를 하게 된다.
  • 1580년 선조 13년, 18세 때 아버지 허엽이 상주에서 객사했다.
  • 1580년 선조 15년, 20세 때 전 해 1579년 딸을 잃고나서 또한 아들 희윤을 잃는다. 곡자를 자식을 잃은 슬픔을 애닳게 그린 시이다.
  • 1583년 선조 16년, 21세 때 둘째 오빠 허봉이 10만양병설을 주장한 이이를 탄핵했다가 귀양을 가게 된다.
  • 1588년 선조 21년, 26세 때 둘째 오빠 허봉이 금강산에서 객사한다.
  • 1589년 선조 22년, 27세의 나이로, 세상을 마쳤다. 경기도 광주 초월면 지월리 경수산에 묻히게 된다.
  • 1589년 선조 22년, 남편 김성립이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남양 홍씨와 재혼한다.
  • 1590년 선조 23년, 동생 허균이 친정에 있던 난설헌의 시를 모아 《난설헌집》 초고를 만들고 유성룡에게 서문을 받았다.
  • 1592년 선조 25년, 남편 김성립이 임진왜란에 참가하여 전사한다.
  • 1598년 선조 31년, 허균이 정유재란 때 원정나온 명나라 오명제에게 난설헌의 시 200여편을 전해주어 이 시가 명나라에서 편찬한 《조선시선》, 《열조시선》 등에 실렸다 .
  • 1606년 선조 39년, 허균이 명나라 사신 주지번, 양유년 등에게 난설헌의 시를 전해주어 《난설헌집》이 명나라에서 간행되었다.
  • 1607년 선조 40년, 4월 허균이 《난설헌집》을 목판본으로 출판하였다.
  • 1711년 일본에서 분다이야 지로베이에 의해 《난설헌집》간행.[2]

         현재 허난설헌의 묘는 경기도 광주시 초월면 지월리 산 언덕 안동김씨 묘역에 있다. 1986년 5월 7일 경            기도 기념물 제 90호로 지정되었다.

허난설헌 생가를 소개 합니다.
강릉시 초당동에 위치한 민가 수준의 고옥이 허난설헌의 생가로 알려진 가옥 입니다.
생가 뒤로 보이는 초당 솔밭입니다.
허난설현 생가와 허난설헌의 생애 허균의 생애와 사상에 대해 설명을 해 드린답니다.
생가터 안에 있는 디딜방아 입니다.
창고에 장작 무더기
생가터 정문입니다.
위에서 보듯이 이이율곡이 태어난 오죽헌과 허균 허난설헌의 생가의 보존상태가 너무 차이 남을 알수 있습니다. 오죽헌은 보물 165호로 정화 사업을 계속 실시하여 강릉의 대표적인 관광지로 거듭나고 있으나 허난설헌 생가는 내가 고등학교 다닐때 해도 평범한 민가의 하나 였습니다. 그러다 강릉허씨를 중심으로 허균 허난설헌 생가 복원 사업과 보존사업을 시행하고 있으며, 허균허난설헌선양사업회를 중심으로 허균 허난설현의 문화적가치와 업적을 발굴 보전 하고 있습니다. 또한 생가 옆에 허균허난설헌기념관도 건립하여 관광객에게 허균 일가의 문학적가치를 널리 알리는 공간의 장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또한 예전엔 초당동의 좁은 골목길로 진입 가능 했었는데 이제는 강문 경포로 이어지는 도로 중간에서 곧 바로 허난설헌 생가터로 진입할수 있도록 했고. 경포호에서도 솔밭길을 따라 솔향기를 마시며 여유롭게 산책을 즐기면서 방문할수 있도록 편의를 제공 했으며 오죽헌은 관람시 이용료를 받으나 허난설헌은 생가터는 물로 기념과도 무료로 개방하고 있습니다.
흙담 옆 배롱나무..

찾아가시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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